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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누가 소크라테스를 죽였나?

by 쌍둥아빠^^ 2006.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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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사를 읽다가 요즈음 세태에 대한 비판이 저를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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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소크라테스를 죽였나?

鄭奎載 < 논설위원ㆍ경제교육연구소장 >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을 명했던 재판관은 1000명의 보통사람이었다. 농부,상인,지식인을 가리지 않고 아테네 시민 가운데 알파벳 순으로 선발된 배심원들이었다. 이들은 계단식 극장에 앉아 양측의 주장을 들은 다음 해가 떨어질 즈음 표결에 들어갔다. 소크라테스를 고발하는 선동적 연설이 이어졌고 노 철학자의 비타협적 반론도 불꽃을 튀겼다. 해가 완전히 졌을 때 집계된 투표수는 불과 35표 차이로 소크라테스의 사형을 결정했다고 이 역사적 재판을 조바심 내며 지켜보았던 플라톤은 기록을 남겼다. 소크라테스는 처음부터 '교양 계급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 민주주의는 언제나 포퓰리즘으로 전락한다'는 입장을 취해왔던 터다.

그는 우리가 너무도 잘아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로 동시대인을 저주했다.

인천 앞바다를 둥둥 떠다닌다는 손가락들을 농담 삼을 정도로 참여 정부의 인기는 바닥을 기고 있다. 누구라도 참담한 심정을 면키 어렵다. 참여정부 4년에 국민의 정부 후반부를 합치면 포퓰리즘은 벌써 6년째다. YS 문민정부까지 합치면 15년이 훌쩍 지났다. 과연 우리는 소크라테스를 사형에 처했던 그같은 대중 선동정치를 이제 마감할 준비가 되었을까.

불행히도 포퓰리즘의 종언을 단정할 만한 근거는 아직 없다. 역사상 가장 완벽한 정치체제라던 20세기 초 바이마르 공화국이 격렬한 포퓰리즘을 거쳐 엉뚱하게도 나치즘으로 흘러갔던 것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교양있는 중산층에 의해 통제되지 않은 민주주의는 언제나 혼돈과 무질서 혹은 그것의 반대편에 있는 명령 경제로 술취한 듯 달려가는 법이다. 대중은 에너지일 뿐 지향성이 없다. 중산층을 자처하는 사람들의 참여정부 비판 열풍이 또 하나의 포퓰리즘이요,'극장의 오류'의 새로운 레퍼토리가 아닌지 역시 판단하기엔 아직 이르다. 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시장경제를 논하는데 있어서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것은 숙고하는 인간들의 질서정연한 선택들이 쌓인 결과일 뿐,제멋대로의 욕망의 체계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존 롤스가 정의로운 체제를 말할 때나 하이에크가 시장경제의 배경적 조건에 유념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판은 이미 도를 넘었지만 그렇다고 구질서의 복원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다. 평준화 교육에 대한 비판으로 부인들의 치맛바람을 옳다 할 수 없고,과중한 세금에 반대한다고 해서 투기적 소득을 합리화할 수는 없다. 부동산 정책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배웠다는 계층의 천박한 집값 담합을 옹호할 수 없고,좌파 환경운동을 비판하는 것과 환경오염을 관용하는 것 역시 별개의 문제다. 공교육의 붕괴를 비판하면서 스스로는 교사에게 은밀한 촌지를 내미는 이중적 허위의식을 버리지 못하는 동안은 전교조는 언제나 이름을 바꾸고 다시 등장하게 마련이다. 중산층 지식그룹의 망년회가 종부세 비판에 열을 내면서 동시에 다음 투기지역에 대한 정보를 열심히 탐문하는 동안에도 마찬가지다. 막스 베버의 말마따나 자본주의 정신은 탐욕이 아니라 절제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386 정치그룹이 홍위병을 흉내내며 나라를 어지럽히는 동안 우리 중산층들은 낡은 개발연대의 천민성을 얼마나 극복했는지 스스로 물어볼 때다. 시장경제 세력을 자처하는 그룹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반외자 정서와 론스타의 주가조작 혐의는 전혀 다른 문제지만 일부 지식그룹은 이를 고의로 버무려 왔다. 이런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대학 사회며 종교단체들은 또 얼마나 스스로를 변화시켜 왔는지 궁금하다. 참여정부에 뛰어든 얼치기 종교인과 그 반대편은 얼마나 다른지,한국의 교회는 어떻게 사교모임과 다르고 기복주술과 다른 것인지 아직은 모르겠다. 참여정부에 반대하는 온갖 잡탕을 모두 시장세력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것 또한 변형된 포퓰리즘일 뿐이다.

이런 질문들에 답할 수 없다면 새해 정치도 기대할 것이 없다. 시장경제를 진정 가치있는 체제로 만드는 힘은 질서 정연하게 숙고하는 건강한 중산층의 존재다. 지금 우리의 중산층은 과연 얼마나 구시대를 탈각한 것인가.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중산층은 "진정 자신을 알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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