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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펌] 슈퍼볼 MVP ‘한국인의 혼’ 하인스 워드

by 쌍둥아빠^^ 2006. 2. 7.
어머니를 부끄러워하던 8살 소년이 있었다. 어머니의 피부색이 자신과 다른 것도 싫었고, 영어를 못하는 어머니가 숙제를 도와주지 못하는 것도 싫었다. 그러나 올해 30살이 된 소년은 어머니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을 글썽거린다. “모든 게 어머니 덕분”이라고 한다.


6일 미프로풋볼리그(NFL) 결승전인 수퍼볼에서 우승 트로피와 함께 최우수선수(MVP)를 거머쥔 ‘한국인의 혼’ 하인스 워드 (피츠버그 스틸러스)의 이야기다.


워드는 1976년 3월8일 서울에서 주한 미군이던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김영희 (55)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생후 5개월 만에 미국으로 건너간 워드는 “당시 한국은 다른 인종끼리 사는 게 용납이 안되는 분위기였다”며 “어머니는 저와 아버지를 위해 한국을 떴다”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결혼 14개월 만에 영어도 서툰 어머니를 버리고 떠나면서 모자의 험한 인생은 시작됐다. 워드는 영어를 할 줄 몰라 양육권을 얻지 못한 어머니 품을 떠나 루이지애나주의 할아버지에게 보내졌다.


모자는 워드가 8살이 되는 해 애틀랜타의 작은 마을에 어렵게 정착한다. 어머니는 생존을 위해 하루에 세 가지 일을 했다. 접시를 닦고, 호텔 청소를 하고, 잡화점 계산대에서 일했다. 워드는 “시간당 4달러25센트의 일”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16시간씩 닥치는 대로 일했다. 워드는 “NFL에 진출한 뒤 흔들리던 나를 지탱해 준 건 어머니의 일하는 모습”이라고 했다.


저녁에 일하러 나가는 어머니가 밥을 해놓고 랩을 씌워놓으면 학교에서 돌아온 워드가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었다. 워드는 “계속 먹다보니 입맛에도 맞았다”고 했다. 어머니는 워드를 한국식으로 키웠다. 워드는 “집에 돌아오면 한국식으로 신발을 벗으라고 했다”며 “한국 문화에 집착하는 어머니가 당시에는 싫었다”고 했다.


워드는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 흑인 친구들끼리 놀다가 어머니가 오면 도망가기도 했다. 그는 “한국계라고 놀림 받는 게 제일 싫었다”고 했다. 어느날 어머니가 차로 워드를 데려다 주는 데 친구들이 손가락질하는 것을 봤다. 워드는 재빨리 차 시트 아래도 몸을 숨겼다. 차에서 내리는데 어머니 눈에 이슬이 그렁그렁했다.


당시 워드는 “나를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를 부끄러워 하다니”란 생각이 스쳤다고 한다. 어머니는 하루에 몇시간 밖에 자지 못했지만 언제나 워드에게 깨끗한 옷을 입혔고, 풍족한 용돈을 줬다. 워드는 “어머니는 한번도 자신을 위해 돈을 써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후 워드는 놀림을 받아도 “그래 나는 한국인이다. 그게 내 인생이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고 한다. 지금 워드의 오른쪽 어깨에는 한글로 ‘하인스 워드’란 문신이 새겨져 있다.


포레스트파크 고교 시절, 워드는 미식축구는 물론 야구에서도 탁월한 솜씨를 뽐냈다. 미식축구에선 쿼터백을 포함해 모든 공격 위치를 소화했고, 야구에선 1번 타자로 뛰며 타율 4할에 도루 35개를 기록하기도 했다. 40야드(36.6M)를 4.47초에 주파하는 빠른 발도 돋보였다.


그는 고교 졸업 무렵 메이저리그 플로리다 말린스로부터 계약금 2만5000달러의 제안을 받았다. 워드는 망설였다. 그 돈이면 어머니의 고생을 조금 덜어드릴 수 있었다. 그러나 워드는 “학업은 계속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대학 진학을 선택했다. 대신 집(애틀란타)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인 조지아 대학을 택했다. 어머니를 홀로 두기 싫어서였다.


대학에서도 그는 쿼터백, 러닝백, 와이드리시버를 모두 소화하는 만능 공격수로 통했다. 고교 시절 주로 쿼터백으로 활약했지만, 대학 1~2학년 때는 주전 러닝백의 부상 공백을 메웠으며 빠른 발 덕분에 와이드리시버로도 뛰었다. 특히 워드는 대학 마지막 경기서 쿼터백으로 출전했으면, 리시빙, 러싱, 패싱 공격 3부분에 걸쳐 모두 1000야드를 돌파하는 전인미답의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팀 승리를 위해 와이드리시버로 경기를 마쳤으며, 감독은 “워드는 희생을 아는 선수”라고 했다.



98년 스틸러스 유니폼을 입은 그는 잘 웃기로 유명한 선수다. 팀 동료는 “언젠가 강한 태클에 걸린 워드의 입에서 치아보호대가 튀어나갔는데도 그는 웃고 있었다”고 했다. 워드는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미국의 한 스포츠전문지는 “워드를 울리려면 어머니 이야기만 꺼내면 된다”고 썼다. 실제 그는 지난 1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도 “저는 어머니에게 신뢰의 가치, 정직,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을 배웠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워드는 한 인터뷰에서 “제 선수생활은 어머니의 인생과 비슷하다”며 “처음에는 맘대로 안되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결국엔 잘 풀린다”고 했다. 어머니 김영희씨는 한 스포츠채널과의 인터뷰에서 “아들에게 늘 하는 이야기는 한 가지다. 겸손하라(Be humble)고 한다”고 말했다. 워드와 어머니는 올 4월 한국에 온다.